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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생 부모 에세이] 아이들에게 배운 것 - 코로나19를 대하는 마음가짐

경로
코로나19로 인해 전에 없던 고민들이 몰려옵니다. 
육아와 직장 외 모든 일상생활에 영향을 받고 있는데요. 
하지만 부모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은 더욱 동요하기 마련이죠. 
이런 시기에 다른 부모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요?

오늘 틈틈이 작가님의 에세이를 통해 위기에 대처하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의연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 힌트를 얻어보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에게 배운 것


코로나19 여파로 아이들이 몇 주째 집에만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디 갈까?” 묻는 아이들이라 안쓰러운 마음에 "우리 웅이 결이 오늘도 집에만 있어야겠네. 심심하겠다."라고 하니 기다렸다는 듯 "응. 언제까지 집에만 있어야 해?" 입이 쭉 나오네요. "우리가 답답해도 집에 잘 있으면 밖에 나갈 수 있는 날이 조금은 빨라질 거야." 이야기를 하고 돌아섰는데, 첫째인 웅이가 "근데 엄마, 집에 있어서 좋은 점도 있어!"라고 합니다.

"집에만 있으니까 옷 안 갈아입어도 되지. 그리고 땀이 안나니까 목욕도 이틀에 한 번만 하지, 정말 좋아."

큭 웃음이 나는데 둘째인 결이도 보탭니다.

"맞아. 집에서 숨바꼭질하다가 옛날에 가지고 놀던 인형도 찾았어. 목욕시켜줬더니 새 인형 선물 받은 것 같아"

'아이고 이녀석들을 누가 말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 사실 '어른'인 저는 갈수록 마음컨디션이 가라앉고 있었거든요. 통제 불가, 예측 불가한 상황에 놓이면 사람이 무기력해진다고 하더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일상이 흔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밖에 나가고 싶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웃음은 잃지 않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저도 다시 웃게 됩니다.



#아이들이 끝없이 성장하는 이유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부모가 되고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내가 아이들을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을 통해 내가 성장한다고 느낀 순간들이요.

아이가 처음 '엄마'라고 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옹알이를 시작하더니 알아들을 수 없던 옹알이가 '음~ 음~'으로 바뀌었고 (내 귀에는 엄마로 들리는) ‘음마’를 거쳐 (남들 귀에도 엄마로 들리는) ‘엄마’가 되더군요. 부모가 되기 전에는 때가 되면 다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라는 한 마디였는데 직접 아이를 키워보니 수천 번의 연습 끝에 내뱉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아이가 만 번을 듣고 연습한 끝에 말하게 되는 거라고 하더군요.

걸음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일어서고, 일어서자마자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다시 일어나 또 엉덩방아를 찧고, 또 일어나 한 걸음을 떼는 과정을 2,000번 정도 반복한 뒤 비로소 걷게 됩니다.

'엄마'라고 말을 하고, 걸음마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이의 끊임없는 노력과 성취에 물개박수를 보내며 한편으로는 나를 돌아봤습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아이만큼 노력을 했나 생각해봤습니다. 부끄럽게도 가물가물하더군요. 끝까지 노력한 기억보다는 ‘될 때까지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가도 한두 번 해 보고 ‘결국 안 되면 괜한 힘만 빼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만둘 거 빨리 그만두는 게 낫지’ 슬쩍 발을 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앞뒤 재지 않고 덤벼들고, 실패해도 툭 털고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모습만큼은 제가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아이에게서 제가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곱 살 때부터 시와 소설 등을 써온 천재 소녀 아도라 스비탁Adora Svitak은 '어른들이 어린이로부터 배울만한 것들'이라는 제목의 테드 강연에서 세계는 아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어른들은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지레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능력의 한계가 없다고요. 과감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시도하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기에 한계를 넘어 성장합니다.

해볼까 말까, 망설여질 땐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엄마 이거 해볼까?” 물으면 아이들은 늘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응!” 대답합니다. 아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아이들처럼 도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서 누리는 즐거움

'불안지수'가 높은 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평안한데 혼자 불안했고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하면 더 불안했습니다. 부모가 되고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뻔합니다. 아이가 울면 ‘왜 울지?’, 자면 ‘어디 아픈가?’, 혼자 놀면 ‘왜 놀아달라고 하지 않지?’ 매순간 걱정이었습니다. ‘처음 부모가 됐으니 그렇겠지, 아이가 자라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왜 우는지,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없을 때 불안했다면 자라면서는 무얼 해줘야 할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아 불안했습니다. 불안의 종류가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박사에 따르면 부모라 불안하지만 부모이기에 불안을 다스려야 합니다. 불안, 죄책감, 화, 불행, 무관심, 편애 등 부모가 겪는 부정적인 감정 중 아이의 ‘심리적 안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불안이거든요. 불안한 부모는 “아이의 안정감에 은밀하지만 깊게 영향”을 끼칩니다. 부모의 불안을 내면화한 아이는 원인도 모른 채 평생을 불안해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불안을 다스리자 마음은 먹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힌트를 준 건 아이들이었습니다.

웅이가 여섯 살 때 일입니다.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텐데 한글이라도 떼야 하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침 어린이집에 다녀온 웅이가 편지를 내밀며 친구가 써줬는데 한글을 모르니 저더러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기회다 싶어 “웅이도 한글을 알면 편지도 읽고, 친구한테 답장도 쓸 수 있을텐데” 부추겼습니다. 웅이는 “괜찮아. 엄마가 읽어주면 되고 답장은 그림 그리지 뭐” 답을 하더군요. “난 한글 몰라도 불편하지 않아. 나중에 배우면 되지. 지금은 블록하고 놀자” 라고 하면서요.

"그래. 나중에 배우면 되지” 아이의 말을 반복하며 흔쾌한 척 같이 블록을 조립했지만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한글을 읽고쓰는 친구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더 초조해졌습니다.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남편이 대뜸 묻더군요.

“우리 웅이 몇 살이지?”
“여섯 살”
“여섯 살이 한글을 알아야 할까?”
“곧 초등학교 가니까...”
“곧 이라고 하지만 2년 뒤 일이야. 2년 뒤인 ‘8살 웅이’를 위해 지금 ‘6살 웅이’의 행복을 미뤄야 할까?”

뜨끔했습니다. ‘8살 웅이’를 생각하며 ‘6살 웅이’의 웃는 얼굴을 놓친 게 사실이니까요. 스탠퍼드 대학 엠마 세팔라Emma Seppala 박사의 “성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주어진 시간의 50퍼센트 정도만을 쓴다. 동물들과 달리 인간의 정신은 그 절반 정도를 방황하느라 허비한다”는 말처럼 저는 미래를 걱정하느라 이 순간의 절반을 허비한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하버드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기분 좋은 일이든 불쾌한 일이든, 정신이 방황하는 순간에 우리는 덜 행복한 경향을 보인다”는 것. 블럭을 조립하며 마음이 불편했던 건 웅이의 미래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웅이가 활짝 웃으며 블럭을 조립할 수 있었던 건 블록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에 집중했기 때문이고요.



이 날 이후로는 아이들처럼 저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걱정을 해서 걱정거리가 해결된 적은 없었습니다. 걱정하는 것의 40퍼센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30퍼센트는 이미 지나간 일이고, 12퍼센트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며 10퍼센트는 사실이든 상상이든 병에 관한 것, 그러니 우리가 걱정하는 것 중 정말 걱정할 만한 일은 단 4퍼센트 뿐이라는 연구결과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아이들이라 예쁜지 알았는데, 부모가 되고는 내 아이들이라 예쁜지 알았는데, 아이들이라 예쁘고 내 아이들이라 더 예쁜 것도 사실이지만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워보니 아이들이 예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푹 빠져 웃고, 즐기고, 도전하는 거요. 웃고 즐기고 도전하는 사람은 아이든 어른이든 예쁘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 번 결심합니다. 아이들처럼 웃고 즐기고 도전하는 어른이 되겠다고요. 제 눈에 아이들이 예쁜 것처럼 아이들 눈에 예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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