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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생 부모 에세이]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후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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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생 부모공감 에세이 다섯 번째 주제는 '친구  같은 부모, 즉 부모의 양육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지만, 아이의 인성과 습관 형성을 위해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할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틈틈이 작가님은 과연 어떤 양육 태도로 자녀와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계신지, 함께 들어볼까요?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후배에게.


얼마 전 곧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후배와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산후조리는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육아휴직은 얼마나 쓸지 등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를 물었습니다.

“친구같은 부모요. 친구처럼 편하고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어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가급적 원하는대로 해주려고요.”

첫째를 임신했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저도 후배처럼 친구같은 부모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부모님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친구들이 부러웠기에 더 그랬습니다.




#허용적 부모 vs 권위있는 부모

일종의 반작용같은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엄격해 어려웠으니 부드러운 부모가 되려고 했고, 부모님께 ‘안 돼’라는 말을 자주 들었으니 가급적 ‘그래’라고 하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며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더군요. 장난감을 사주는 것을 두고도 그랬습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첫째는 으레 장난감 코너 앞에 멈춰서곤 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들고 놓지 않았죠. “오늘은 장난감 사는 날 아니니 구경만 하기로 했지? 내려놓자”고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첫째는 그럴수록 장난감을 꼭 끌어안고 간절한 눈빛으로 가지고 싶다고 호소했습니다. 내려놓자, 못 내려놓는다 실랑이를 하다가 아이 눈에 눈물이 고이면 ‘이게 얼마나 한다고 애를 울리기까지 하나’ 싶어 장바구니에 넣곤 했습니다. 언제 울었냐는 듯 환히 웃는 아이를 보며 ‘그래, 네가 좋으면 됐다’ 겉으로는 같이 웃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찜찜했습니다. 정말 아이가 좋으면 된 건가 싶었습니다.

그러다 한 육아서에서 ‘부모의 네 가지 양육 태도’를 접했습니다. 발달학자인 다이애나 바움린드+Diana Baumrind가 1960년대에 취학 전 아이를 둔 부모를 면접하고 아이의 행동을 기록해 정리한 것인데요. 바움린드에 따르면 애정과 통제라는 두 가지 측면을 결합해 양육 유형을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애정은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수용하고 반응하고 지지하는가, 통제는 아이의 행동에 얼마나 확고한 규칙으로 대하는가 의 측면입니다.




바움린드는 양육 태도를 유형화한 뒤, 각 유형의 부모 밑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까도 살폈습니다.

우선 허용적 부모의 아이는 자신감이 높지만 자제력은 약했습니다. 독재적 부모의 아이는 독립심이 낮으며 의존적이거나 반항적 성격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고, 방임적 부모의 아이들은 자기통제력이 부족하며 인지 발달 수준도 낮았습니다. 반면 민주적 부모의 아이들은 자아존중감이 높고 또래 사이에 인기도 좋았으며 독립심도 높았습니다.


한 마디로 민주적 부모의 아이들이 가장 잘 자란다는 말이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허용적 부모의 아이들이 가장 잘 자랄 거라 생각했거든요.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 어떻게 하면 아이와 더 가까워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허용적 태도가 문제가 되다니요.




#프랑스 육아의 핵심 ‘카드르’

마침 장난감 욕심을 멈추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부모로서 잘 하고 있는걸까 의구심이 들던 때라 바움린드의 연구가 마음 속에 깊이 남았습니다. 이참에 부모됨을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면 좋은거지’ 라는 마음을 넘어 단단한 부모가 되기로 했습니다. 애정의 수준은 유지하되 통제의 수준을 높이기로 했습니다. ‘친구 같은 부모’의 방점을 ‘친구’에서 ‘부모’로 옮겼습니다. 필요할 땐 주저하지 말고 ‘안 돼!’ 라고 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부모들에게서 카드르cadre를 배웠습니다. 카드르는 액자나 거울의 틀을 뜻하는 프랑스말인데 육아에서는 범위와 한계를 의미합니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카드르’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합니 다. 마냥 엄격한 것은 아닙니다. 카드르 안에서는 무한한 자유를 허락합니다. 딱 민주적 부모였습니다. 단적인 예가 식탁 예절입니다. 프랑스 식탁에서는 아이들이 얼마나 먹느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 식탁에 오른 음식은 최소한 한입씩은 먹어야 하죠. 모든 음식을 골고루 맛 봤다면 식탁에서 일어나도 됩니다. 그렇게 자란 프랑스 아이들은 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집과 비교해봤습니다. 올바른 식습관을 형성해주고 싶은 마음은 같습니다. 하지만 저도 남편도 아이가 편식을 할 땐 한번 권했다가 도리질하면 ‘자라면 나아지겠지’ 물러섰습니다. 강하게 권유하다가 오히려 편식이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거든요. 프랑스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강압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 ‘먹어!’ 눈을 부릅뜨고 명령하는 것이 아닌 차분하게 설명하며 단호하게 이끈다고 하더군요.

프랑스 부모들은 서두르지 않고 끈기 있게 카드르를 적용합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이 골고루 먹는 것이 아니라 결국 골고루 먹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 집에도 적용해봤습니다. 아이들에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도 싫어하는 음식도 있지만, 우리 몸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음식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더 먹고, 덜 먹는 것은 자유지만 최소한 한 입씩 먹기를 규칙으로 정했습니다. 포인트는 아이뿐 아니라 부모인 저도 남편도 같이 지키는 것. 식사 때마다 규칙을 이야기하고, 남편도 저도 식탁 위에 올라온 음식은 한 번씩 맛보았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남편도 저도 편식이 없는 편이 아니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과 저만 지켰지만 서서히 아이들도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규칙을 많이 정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가급적 줄이려고 합니다. 통제의 수준을 높이자고 마음먹은 후 규칙의 수를 늘렸더니 부작용이 있었거든요. 규칙이 늘어나자 아이가 규칙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규칙이 늘어날수록 규칙의 힘이 약해졌다는 겁니다. 지켜지지 않는 규칙은 없느니만 못합니다. 통제의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자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순간 단호하게 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예외없이 적용하려고 합니다.

후배에게도 이야기해줬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가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필요할까도 중요하다”고요.